1. 줄거리
파커 J. 파머의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는 저자가 20년 넘는 삶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소명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는 산문집이다. 이 책은 단순히 개인의 소명 찾기를 넘어, 사회생태학적인 관점에서 삶의 의미를 탐구한다. 파머는 교육자이자 사회운동가로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 존재의 본질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구조를 연결짓는다.
책의 첫 부분에서는 저자가 겪은 다양한 시행착오와 그로 인해 얻은 깨달음이 서술된다. 그는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며,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된다. 또한, 그는 소명이라는 개념을 개인의 삶에 국한하지 않고,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파머는 다양한 사례와 이야기를 통해 독자에게 깊은 감동을 주며, 삶의 의미를 찾는 여정이 결코 혼자만의 싸움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각자의 소명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일깨운다. 이 책은 독자에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고, 진정한 소명을 찾기 위한 질문을 던진다.
2. 교훈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에서 가장 큰 교훈은 소명 찾기가 개인의 여정일 뿐만 아니라,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파머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깊이 있게 탐구하며, 소명이란 단순히 개인의 욕망이나 목표가 아니라, 공동체와의 연대 속에서 발견되는 것임을 강조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소명이라는 개념이 단순히 직업이나 역할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명은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질문이다. 파머는 이러한 질문을 통해 독자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고, 더 나아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게 한다.
또한, 파머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실패와 고통이 소명 찾기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종종 실패를 두려워하고, 고통을 피하려고 하지만, 이러한 경험들이 결국 우리를 성장하게 만든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는 고통을 통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고, 이를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수 있음을 일깨운다.
결국, '삶이 내게 말을 걸어올 때'는 나에게 소명 찾기의 여정이 개인적인 것이면서도 동시에 사회적인 것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각자의 소명이 모여 더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책은 나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고, 앞으로의 삶에서 소명을 찾기 위한 여정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는 다짐을 하게 만들었다.
3. 책속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를 묻기 전에 "나는 누구인가?"를 먼저 물어라. 인생에서 무엇을 이루고자 하기 전에, 인생이 당신을 통해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지에 귀 기울이라.
돈을 벌고 권력을 얻고, 경쟁에서 이기거나 자기 자리를 탄탄하게 굳히는 일보다 더 의미 있는 삶의 길을 찾는 사람일지라도, 자칫하면 그 여정에서 자기 것이 아닌 인생을 살 수도 있음을 나는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했다.
원인은 나의 내면에서 밖으로 뻗어나간 삶이 아니라 바깥 세계에서 안으로 밀려들어온 삶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 마음에 귀 기울이기 보다 영웅들의 인생을 흉내내는 '고상한' 길을 찾았던 것이다.
나는 한때 소명을 자기 인생이 원하든 원치 않든 따라야만 하는 단호한 의지의 행동이자 인생의 방향을 선택하는 엄숙한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우리가 어떤 죄의식과 강박증에 사로잡혀 진리와 선의길을 따른다면 소명에 대한 그런 접근법이 옳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믿고 있는 것처럼 진정한 우리의 자아가 추구하는 것이 완전함이라면, 마음에도 없는 소명을 추구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폭력이다. 아무리 숭고한 비전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내부에서 길러진 것이 아니라 밖에서 부터 부여된 강제의 것이라면 그것은 심각한 폭력이다.
소명은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듣는데서 출발한다. 우리는 인생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그 참모습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 참모습이 내가 원하는 인생의 모습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고 해도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 인생은 내 의도가 아무리 진지하다 할지라도 결코 참된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다.
소명의 참된 의미는 'vocation' 이라는 단어 안에 숨겨져 있다. 소명이라는 단어의 어원은 라틴어로 목소리 voice이다. 소명은 내가 추구해야 할 목표를 의미하지 않는다. 소명은 내가 들어야 할 내면의 부름의 소리이다. 내가 살아가면서 이루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말하기에 앞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말해 주는 내 인생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만 한다. 나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일러 주는 진리와 가치에 귀 기울여야만 한다. 마지 못해 따르는 삶의 기준이 아니라 진정한 내 인생을 살기 위해 따르지 않을 수 없는 그런 기준 말이다.
오늘날 내가 이해하는 소명의 의미는 상당히 다르다. 소명이란 성취해야 할 어떤 목표가 아니라 주어지는 선물이다. 소명의 발견이란 얻기 힘든 상을 바라고 다투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가지고 있는 참자아의 보물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기 본연의 모습을 찾는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짤막한 하시디즘 (유대교 신비주의)의 이야기가 하나 있다. 백발이 성성한 랍비 주즈야의 말이다.
"신은 내게 '왜 너는 모세 같은 사람이 되지 못했느냐? 라고 묻는게 아니라 왜 '너는 주즈야 답게 살지 못했느냐?'라고 물을 것이오.
참자아의 선로를 벗어났을 때 어떻게 하면 그 흔적을 다시 찾아갈 수 있을까?
한가지 방법은 타고난 재능에 근접하게 살았던 어렸을 때의 기억에서 실마리를 찾는 것이다.
모세가 되기 위해 발버둥치기보다는 주즈야로 이땅에 살고자 할 때 비로소 참된 소명을 발견할 수 있다. 소명에 대한 가장 깊은 질문은 '내가 해야할 일은 무엇인가?'가 아니다. 더욱 본질적이며 어려운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 내가 타고난 본성은 무엇인가? 이다.
진정한 소명은 자기와 봉사를 하나로 결합한다. 프레더릭 뷰크너는 소명을 '마음 깊은 곳에서의 기쁨과 세상의 절실한 요구가 만나는 지점'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뷰크너의 정의는 소명이란 자아에서 시작하여 세상의 요구를 향해 나아간다는 것이다.
이십대 초반, 내게도 어둠이 드리우기 시작했을 때 나는 나만 홀로 구제 불능의 실패를 겪고 있다고 생각했다. 모든 인류가 참가하는 여행에 나도 함께 승선한 것뿐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그때 내가 배운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소명이야말로 한사람이 전심을 다해 분투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었다.
사실 나는 다른 일을 할 수도 없었다. 늦게 깨달은 것이지만 가르치는 일이야말로 내가 세상에 올때 타고난 삶의 방식이다. 목사가 되든 기업의 최고 경영자가 되든, 아니면 시인이나 정치가가 되어서도 나는 가르치는 일을 할 것이다. 가르치는 일이야말로 내 소명의 본질이며, 내 직업이 무엇이든 그 것은 명백히 드러날 것이다.
자기를 돌보는 것이 결코 이기적인 행동은 아니다. 그것은 나의 유일한 재능, 이땅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할 재능을 잘 관리하는 책무일 뿐이다.
나는 더 이상 내면에 간직한 진실과 상반되는 외면을 가장하며 살지 않으리라. 나는 더 이상 불완전한 사람인 척하며 살지 않으리라.'
'길이 열릴 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는 거지. 세월은 쏜살같이 흘러서 곧 중년에 접어들 텐데. 나는 아직도 내 소명의 길을 찾지 못했어. 이제까지 내 앞에 열렸던 길은 모두 잘못된 길이었지'
우리는 모두 본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이 말은 한계와 능력 모두를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능력을 깨닫는 것도 그렇지만 직접 자기 한계에 뛰어들어 봄으로써 우리는 자신의 본성을 더 많이 알수 있다.
나도 한편으로는 이러한 희망이라는 미국의 유산을 소중히 생각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불가능은 없다는 생각만을 고집한다면, 길이 닫힐 때 일어나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를 놓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자꾸만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들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누군가에게 주고 있다면 나는 잘못되고 위험한 산물, 사랑처럼 보이지만 사실 사랑이 담기지 않은 선물을 주는 것이다.
나의 본성을 거스르는 것을 나타내는 하나의 징후는 소위 탈진이라는 상태이다. 대개는 너무 많은 것을 주려는 데서 나오는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내 경험상 탈진은 내가 갖지 않은 것을 주려고 할때 나오는 결과이다. 탈진은 분명 공허함이지만 내가 가진 것을 주는 데서 나오는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주려고해도 아무 것도 없음이 드러나는 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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