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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니맨: 줄거리, 교훈, 책속으로

by thegreatmerchant 2025. 3. 11.

저니맨, 파비안 직스투스 쾨르너
저니맨

 

1. 줄거리

 



『저니맨』은 독일의 청년 파비안 직스투스 쾨르너가 스물여덟의 나이에 단돈 30만 원을 들고 떠난 수련여행의 기록이다. 이 책은 그가 2년 2개월 동안 10개국을 여행하며 겪은 다양한 경험과 만남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파비안은 여행 중에 먹을 것과 잠자리를 제공받는 조건으로 다양한 일들을 하며, 각국의 문화와 사람들을 직접 체험한다. 그는 여행을 통해 단순한 관광이 아닌, 진정한 의미의 '수련'을 추구한다. 

여행의 시작은 그가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갈망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기 위해 떠났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파비안은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 그들이 가진 가치관, 그리고 각국의 문화적 차이를 통해 자신의 시각을 넓히고, 삶의 의미를 탐구한다. 

그의 여정은 단순히 지리적 이동이 아니라, 내면의 성장과 자아 발견의 과정이다. 그는 여행을 통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이 책은 파비안의 여행을 통해 독자에게도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주며, 각자의 삶에서의 '여행'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2. 교훈



『저니맨』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느낀 교훈은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자기 발견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파비안은 여행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가치관을 재정립하고, 삶의 의미를 찾는다. 이는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 자신을 던지는 것은 때로는 두려운 일이지만, 그 과정에서 얻는 경험과 깨달음은 우리를 성장하게 만든다.

또한, 파비안이 보여준 '열린 마음'과 '호기심'은 여행의 진정한 의미를 잘 나타낸다. 그는 각국의 문화와 사람들을 존중하며, 그들과의 소통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한다. 이는 우리가 일상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을 때도 적용될 수 있는 교훈이다. 서로 다른 배경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의 소통은 우리의 시각을 넓히고, 더 나은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용기'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파비안은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쫓아 떠난다. 이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교훈이 된다. 삶은 언제나 불확실하고, 그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길을 찾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저니맨』은 단순한 여행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우리에게 삶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각자의 여정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책이다. 이 책을 통해 나도 나만의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3. 책속으로

인간은 두번 태어난다. 한번은 어머니의 자궁에서, 또 한 번은 여행길 위해서. 이제껏 한 번도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면, 모두에겐 또 한 번의 탄생이 남아 있는 셈이었다.

여행은 확실히 뜻하지 않은 위기와 위험요소를 지니고 있다. 그런 까닭에 여행기피증에 걸리기라도 한 듯 좀처럼 떠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멈춘 상태로 계속 정지해 있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는 것 중에서 무엇이 더 위험할까? 정지해 있는 자가 상대적으로 안전할 수는 있을지라도 긴 인생으로 보면 돌이킬 수 없는 위험 속으로 서서히 가라앉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강물이 직선으로만 흐르지 않듯이 삶도 언제나 목표한 결말에 유용한 방식으로만 흘러갈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럴 때 마냥 좌절하지 않고 그저 삶 자체를 즐기는 연습도 필요한 것은 아닐까

참으로 여행이란 묘한 힘을 지녔다. 시시각각 예상치 못한 사건과 인연을 툭툭 던져주지 않는가. 그것은 일종의 신호와도 같다. '변화할 것인가, 그대로 멈춰 있을 것인가'를 묻는 신호. 그 모든 신호를 받아들이는 마음 자세에 따라 여행자의 운명은 달라진다.

"사람들이 너를 대접하는 것보다 더 높은 자리에 너 자신을 올려 놓아야 해." 일에서 의미와 보람을 못 느끼는 것은 일을 준 사람의 책임이 아니다. 일에서 느끼는 가치와 보람은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니라 찾아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선택한 일이야말로 자신의 품격을 높이는 가장 큰 수단일 것이다. 여기에는 그 어떤 핑계나 조건도 존재하지 않는다.

삶은 주어진 것이다. 그것은 선물일 수도, 부역일 수도 있으나 어찌되었든 최선을 다해 제 몫을 살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에는 변화가 없다.

어차피 여행이란 외로움과 동행하는 여정이자, 내가 나의 유일한 동료가 되는 시간이었다.

내가 어디에 가고 어디에 살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일을 겪고,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누구와 함께 있었는가, 이것뿐이다. 친구가 없는 순간이야말로 가장 끔찍한 공허의 시작이다. 변함없이 중요한 단 하나는 바로 사람이다. 곁에 있는 좋은 사람들.

사람은 누구나 안정을 원하고, 또 그 속에서 풍요로운 삶을 꿈꾼다. 하지만 안정이란, 달리 말해 변화 없음을 뜻하기도 한다. 모든 정지한 것들은 계속 정지해 있으려는 관성의 법칙에 지배받기 때문이다.

먼 길을 떠나는 여행자 일수록 짐이 가벼워야 한다. 배낭 속의 짐 뿐만 아니라, 머릿속에 든 짐까지. 여행이란 내가 알고 있던 지식이나 신념을 공고히 다지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 새로운 관념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순수하고 낮은 마음으로 여행하다 보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믿음.

'철저한 계획'이란 행동을 두려워하는 자의 변명이다.

번지점프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뛰어내리기 직전까지, 그 갈등의 순간이 가장 두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뛰어내리고 나면 두려움은 말끔히 사라진다. 갈등상황이 끝났기 때문이다. 뛸까 말까 망설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두려움은 더욱 커지고 결국 못 뛰어내리게 될 것이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 높은 점프대에 오르자마자 하나, 둘, 셋 외치기도 전에 몸을 날린다.

두려움은 우물쭈물하는 자에게만 기생하는 정신의 독버섯과 같다. 그리고 놈은 주로 갈등을 먹고 산다. 두려움을 굶겨 죽이려면 갈등부터 끊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다소 무모하더라도 배짱을 부려야 한다.

수련여행을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내가 서 있던 계단보다 한참아래에 있는 계단을 수없이 목격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도저히 불평불만을 쏟아낼 수 없을 만큼 높은 계단에 내가 서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곤 한다. 나에겐 살기 위해 경쟁할 기회는 물론 세상을 여행할 자유와 숙식을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의 재능까지 주어져 있지 않은가. 지금 이 계단만큼이라도 올라서기 위해 필사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되면 '절망'이니 '의욕상실'이니 하는 말은 도저히 함부로 사용할 수 없으리라.

자기가 몸담은 자리에서 떠나지 않은 채 성공하려면 사람들은 오로지 전공 하나만을 집요하게 파내려간다. 하지만 세상을 좀 더 넓게 껴안으려면 마음이 끌리는 모든 분야에 관심을 열어놓아야 한다. 취미와 관심사가 다양하다는 것은 그만큼 세상을 향한 더듬이가 많아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떠나면 자유로워진다는 말은 살던 곳에서의 의무와 책임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런 제약 없이 이제껏 해보지 못한 다른 생각, 다른 고민에 뛰어들 기회를 얻는 것을 뜻한다. 진정한 여행은 현실과 맞닿아 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을 설레게 만드는 일, 그것이 여행이다.

이제 녀석은 나이만 들면 된다. 성장이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정확히 알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아는자'의 트럼펫 연주에 한동안 심취해 있었다.

여행이란 때로 이토록 냉정하다. 낭만을 안고 떠난 자에게 현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떠나지 않은 자에게 세상은 낭만이라는 허상으로만 존재한다.

이 여행이 나에게 가르쳐준 것 중에서 가장 우선순위를 꼽으라면 '넌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떤 삶이든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인생이라는 무한한 좌표 위에서 반드시 고정불변의 그래프를 그려놓고 그 직선만을 따라가며 사는 인생은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다.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고 물었고 나는 존재를 택했다. 다만, 존재함으로써 행복할 뿐이다.

내가 지난 2년 반 동안의 수련여행을 통해서 얻은 가장 중요한 깨달음도 바로 이것이다. 모든 규칙과 한계는 다른 사람의 경험을 해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규칙이 나에게도 똑같이 의미 있는 규칙이어야 하는 건 아니다. 우리는 사회적 보편이라는 이름으로 너무나 쉽게 다른 사람의 행동규칙과 삶의 설계를 따른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들이 옳거나 합당하다고 여기는 것을 자식들에게 가르침으로써 그것이 기능하는 시스템을 후손들에게 물려준다. 후손들은 종종 그것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맹복적으로 따른다. 그것은 불문율에 해당하며 그것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눈총을 받거나 단죄된다.

수련여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10가지

  1. 인생의 배낭이 최적화된다.
  2. 오아시스와 같은 친구들을 얻을 것이다.
  3. 세상을 보는 채널이 다양해진다.
  4. 보이지 않던 길이 눈에 들어온다.
  5. 세계를 지각하는 더듬이가 발달한다.
  6. 새로운 파도타기를 즐기게 된다.
  7. 남다른 심미안이 열린다.
  8. 시간 지배력이 강해진다.
  9.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에너지로 바뀐다.
  10. 타인의 의지에 휘둘리지 않게 된다.

 

4. DEEP DIVE

꼭 어딘가로 떠나야 여행이라고 생각지는 않는다. 한곳에 정착해 있어도 생각과 사유가 자유롭다면 그 사람은 물리적 여행자 만큼이나 자유로운 영혼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지금의 나를 돌아본다. 나는 지금 생각과 사유가 자유로운가. 그렇지 않다면 지금의 나를 옳아매는 것이 무엇일까. 여러가지가 한꺼번에 떠오르지만, 가장 큰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내 삶에 토대가 되었던 信仰 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로켓처럼. 로켓이 우주로 날아가기 위해서는 엄청난 무게의 추진체가 필요하지만, 일정 궤도 이상에서는 그 추진체 자체를 분리시켜 그것에서 자유로워 지듯이 한 때 信仰은 내 삶에 강력한 추진체였지만, 지금은 적정한 타이밍에 떨어져 나가지 못하고 어딘가에 잘못 들러 붙어 앞으로 나가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저니맨... 여행이란, 일종의 관성을 법칙을 깨는 것과 같다. 이전과 같은 방식에서 탈피하기 위한 여러가지 시도 중에 하나가 바로 여행이다. 여행은 새로운 곳에서 맛있는 것도 먹고 쇼핑도 하고 여러가지 체험을 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관성에서 벗어나는 것, 그래서 그 어색함과 생소함으로 나를 밀어넣는 것이 어쩌면 더 큰 목적일지도 모른다.

내 인생은 10년에 한번씩 큰 변화가 있었는데, 이제 점점 그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그런데 요즘은 왠지 그 '변화'라는 것이 내가 지금까지 겪어왔던 방법과 수준이 아니라, 전혀 다른 모양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길을 떠나는 여행자처럼, 길을 나서는 것은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하겠지만, 한 발 떼는 것 그것 자체로 변화의 시작이라면 그 변화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 싶다. 어차피 우리는 정착과는 거리가 먼 나그네의 삶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