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줄거리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은 한국의 대표 지성 이어령 선생님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 전하는 지혜와 통찰을 담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 김지수 작가와의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어령 선생님이 오랜 암 투병 중에 느낀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선생님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삶의 의미와 죽음의 불가피성을 이야기하며, 독자들에게 진정한 삶의 가치를 일깨우고자 한다. 특히,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단순한 회고록이 아니라,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지혜를 나누고자 하는 선생님의 진정한 의도가 담겨 있다.
2. 교훈
이 책에서 가장 큰 교훈은 삶과 죽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이어령 선생님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삶의 순간들을 소중히 여기고, 매일매일을 의미 있게 살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다. 선생님은 자신의 지혜를 후세에 전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집필하였으며, 이는 독자들에게도 큰 감동을 준다. 결국, 이 책은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더욱 깊이 있게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3. 인상깊은 구절
책 속에서 이어령 선생님은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라는 말을 남긴다. 이 구절은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우리는 종종 죽음을 두려워하고, 그것을 피하려고만 한다. 하지만 선생님은 죽음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 더 나아가 새로운 시작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죽음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또한, "삶은 한 편의 영화와 같다.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마지막 장면을 준비해야 한다"라는 구절도 인상 깊었다. 이는 내가 일상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다시금 고민하게 만들었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삶의 소중함과 죽음의 의미를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되었고, 앞으로의 삶을 더욱 의미 있게 살아가고자 다짐하게 되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라는 사람은 최초로 죽음학을 했고 죽음에 대한 강의를 그렇게 많이 했는데도, 정작 자기가 암에 걸리고는 감당을 못했어. ..... 지금까지 내가 말한 것은 타인의 죽음이었더. 동물원 철장 속에 있는 호랑이였지. 지금은 아니야. 철창을 나온 호랑이가 나한테 덤벼들어. 바깥에 있던 죽음이 내 살갗을 뚫고 오지. 전혀 다른 거야. 전두엽으로 생각하는 죽음과 척추신경으로 감각하는 죽음은 이토록 거리가 멀다네.
언어가 틀에 갇히면 사고도 틀에 갇힌다.
의무감으로 책을 읽지 않았네. 재미없는 데는 뛰어넘고 눈에 띄고 재미있는 곳만 찾아 읽지. 나비가 꿀을 딸 때처럼. 나비는 이 꽃 저 꽃 가서 따지. 1번 2번 순서대로 돌지 않아. 목장에서 소가 풀 뜯는 걸 봐도 여기저기 드문드문 뜯어. 풀 난 순서대로 가지런히 뜯어먹지 않는다고.
생각이 곧 동력이라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중력 속의 세상이야. 바깥으로부터 무지막지한 중력을 받고 살아. 억압과 관습의 압력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생각하는 자는 지속적으로 중력을 거슬러야 해. 가벼워지면서 떠올라야하지. 떠오르면 시야가 넓어져'
사람들이 얼머나 많은 프레임에 갇혀 사는지 스스로 깨달아야 해. 어린애 눈으로 보면 직관적으로 알아. '어 이상하다!' 그런데 고정관념의 눈꺼풀이 눈을 덮으면 그게 안 보여. 달콤한 거짓말만 보려고 하지.
럭셔리한 삶..... 나는 소유로 럭셔리를 판단하지 않아. 가장 부유한 삶은 이야기가 있는 삶이라네. 스토리텔링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가 그 사람의 럭셔리지.
interest라는 영어 단어는 관심. 재미라는 뜻도 있지만, 이익, 이자라는 뜻도 있어. 우리가 이익을 이자를 내려면 애초에 관심 있는 것, 흥미 잇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해. interest가 출발이지. 그게 모든 일의 순서고 이치라네.
죽음은 신나게 놀고 있는데 엄마가 '얘야, 밥 먹어라' 하는 것과 같은 거라고.
부모 입장에서도 시키는 대로만 사는 효자보다 '존재하겠다'고 아버지의 울타리를 박차고 나갔다 돌아온 자식이 얼마나 더 장하고 측은하겠느냐고. 그가 탕자의 변호인 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게 집을 나가 자수성가한 아이가 울통불통해도 자기 금덩이를 캐고 돌아온다고. 목장 물려받아 유산 상속하면 유산세 내고 몇 푼이나 남겠느냐고. 자기 집 목장에 없는 쓴 열매라도 따온 탕자가 인간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고.
육탄 테러하는 자들이 다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네. 나치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8백만 명 유대인을 죽였어. 관점에 따라, 시간에 따라 변하는 게 인간사인데 '예스'와 '노'만으로 세상을 판단하거든. 메이비maybe를 허용해야 하네. 메이비가 가장 아름답다고 포크너가 그랬잖아. 메이버 덕분에 우리는 오늘을 살고 내일을 기다리는 거야.
오늘도 내일도 똑같으면 뭐하러 살 텐가. 진리를 다 깨우치고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더 이상 살 필요가 없네. 이제 다 끝났잖아. 서울이 목표인 사람은 서울 오면 끝난 거야. 인생은 나그네 길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경유지, 반환지가 있을지언정 목표는 없네. 평생을 모험하고 방황하는 거지. 길 위에서 계속 새 인생이 일어나는 거야. 원래 길의 본질이 그래. 끝이 없어. 이어지고 펼쳐질 뿐.
이런 역설을 모르면 인생 헛산 거라니깐. 꿈이라는 건 빨리 이루고 끝내는 게 아니야. 그걸 지속하는 거야. 꿈 깨면 죽는 거야. 내가 왜 남은 시간을 이렇게 쓰고 있겠나? 죽고 나서도 할말을 남기는 사람과 죽기 전부터 할말을 잃은 삶 중 어느 사람이 먼저 죽은 사람인가? 유언할 수 있는 사람이 행복한 거라네.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네.
인생도 그렇다네. 세상을 생존하기 위해서 살면 고역이야. 의식주만을 위해서 노동하고 산다면 평생이 고된 인생이지만, 고생까지도 자기만의 무늬를 만든다고 생각하며 즐겁게 해내면, 가난해도 행복한 거라네.
'정해진 대로 살면' 그게 정말 행복일까? 아니야. 가짜 행복이네. 길 잃은 양이 된다는 것은 자기 의지대로 '큰 감자와 작은 감자'의 기준을 만드는 일이라네. 화문석을 짜는 일이야. 돈을 받는 노동이라도 자기 생각이 들어가 잇고 자기만의 성취의 기준이 있어. 그때 비로소 '그림자 노동'에서 벗어나는 거야. 예술가가 되는 거야. 노동을 하는 순간에도 예술을 하고 있는 거야.
목마름을 다 채우지 않는 거지. 나는 그동안 올림픽도 해보고 희곡도 써보고 소설도 써보고 시도 쓰고 기호학도 연구했어. 각 분야에서 웬만큼 이뤄내니, 남들은 '저분이 하나만 하면 대단할 텐데 이것저것을 다 한다'고 안타까워해. 아니야. 나는 이것저것을 햇기 때문에 계속할 수 있었어. 그러지 않았다면 재미 없어서 못 했을 걸세. 그리고 정상에 오를만하면 갈증을 남겨두고 길을 떠나지. 왜? 올라가면 끝나는 거니까.
두레박 스타일은 한곳에 안주하지 못하고 직업도 이것저것 여러가지야. 인생이 변화무쌍해서 '나는 왜 이럴까' 곧잘 후회는 해도 자살은 안해. 다음이 또 있으니까. 그런데 물독은 다 채우면 허무해진다네. 예를 들어 부부가 인생 올인하고 빚내서 아파트 한칸 마렸했어. 이사하면 그 다음에 뭘 할 건가?
궁극적으로 인간은 타인에 의해 바뀔 수 없다네. 스스로 깨닫게 스스로 만족할 수 밖에 없어. 그게 자족이지. 자족에 이르는 길이 자기다움이야. 남이 이랬다고 화내고 남이 저랬다고 감동해서 그 사람의 제자가 되는게 아니란 말일세. 남하고 관계없이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경지를 동양에서는 군자라고 해. 군자가 되는 것이 동양인들의 꿈이었지. 스스로 배우고 가르치고, 스스로 알고 깨닫는 자. 홀로 자족할 수밖에 없는자....그래서 군자는 필연적으로 외롭지.
가장 아쉬운게 뭔 줄 아나? '살아 있을 때 그 말을 해줄걸' 이야. 그때 미안하고 할걸. 그 때고맙다고 할 걸......지금도 보면 눈물이 핑 도는 것은 죽음이나 슬픔이 아니라네. 그때 그 말을 못 한 거야. 그 생각을 하면 눈물이 흘러.
나는 지금도 외국 여행을 가면 대실망이야. 어릴 때 소설을 읽으며 파리, 런던, 러시아를 다 상상으로 여행했어요. 내가 실제 만난 에펠탑은 낵가 언어로 상상한 것보다 훨씬 작고 초라했지. 어릴 때 어려운 책을 읽으면 상상의 언어능력이 발화돼요. 지금도 나는 모든 문제를 어원으로 접근해요.
4. DEEP DIVE
오랜만에 다시 책을 집어 들었다. 최근에 작고하신 이어령 선생님을 인터뷰한 책. 이전부터 읽고 싶었지만, 한동안 잊고 지낸 것 같다. 문장 문장 마다 감동과 진한 전율이 흘러 나온다. 나의 지식 수준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도 너무 많다. 그럼에도 오랜 시간 다듬어져 온 그분의 말의 무게와 깊이는 감각적으로도 쉽게 알수 있었다.
밑에도 썼지만, 가장 부유한 삶은 이야기가 있는 삶이라는 말이 여전히 가슴에 와 닿는다. 어쩌면 나도 그런 삶을 살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던 것 같다. 식당을 가도 한번 갔던 곳 보다는 다른 곳을 가고 싶었고, 같은 목적지라도 다른 루트가 있으면 그렇게 가고자 했던 것 같다. 그 모든 것이 나의 유한한 삶에 조금이라도 이야기를 더 담아보려는 노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언젠가 끝이 있어서 빨리 그것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모험하고 방황하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결국에 마주할 끝이 있다 하더라도 끝까지 꼿꼿하게 나를 치켜 세우는 방법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지혜 한자락의 힘. 지속적으로 생각하는 훈련을 통해 관습의 중력에서 벗어나자.